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사 동호인 (문단 편집) === [[사학]]과의 관계 === 사학 전공자와 역사 동호인의 관계 역시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그 격차가 [[넘사벽]]이었지만 인터넷에서 전공자 출신 역사 동호인들이 나타나고, 주로 [[밀덕]]라인을 파던 동호인들이 다른 곳에도 손을 대면서 그 차이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전공자들도 다 같은 것이 아니고 물론 진심으로 학문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지만, 점수에 맞춰 오거나 단순한 흥미만으로 전공을 택한 경우도 있으며 고학년이 되면 취업 등에 신경쓰느라 전공 지식에 다소 소홀해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학교와 학과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본격적인 '학자'로서 발을 들이는 석박사 과정에 비해 학부 과정에서 역사라는 방대한 영역을 일정 이상 깊게 소화하기는 어렵다. 물론 개인마다 [[케바케]]고, 전공인 이상 상대적으로 훨씬 체계적으로 공부하지만 정식 학자 수준의 레벨로까지 깊이를 갖추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역사학 안에서도 서양사가 다뤄지는 비중은 높은 편인데[*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수학, 언어, 과학, 경제학, 철학 등 21세기 문명 전반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학사까지 서양사를 체계적으로 수강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세 곳뿐이므로 전공자가 적은 실정상 서양사 분야에서는 취미인인 역덕후 중에서도 해당 기관 출신 [[네임드]]가 많다. 그 외에도 역사 동호인들 가운데는 국내 학자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마이너한 지역, 나라, 사회 등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국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자료로는 한계가 있고 자문을 줄 만한 전문가도 찾기 힘들지만, 독학을 통해서나마 마이너한 나라, 시대, 사회에 대해 파고든 컨텐츠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어쨌든 '''취미 수준인 역사 동호인에 비해 전공자는 진짜 역사학자에게 깊이 있게 베우거나, 아예 생업이기에 범위는 몰라도 깊이에서는 결국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생 수준까지는 지엽적인 부분에서 역사 동호인이 더 앞설 수 있지만, 대학원으로 갈수록 차근차근 배우게 되면서 차이는 드러난다. 특히 사료와 텍스트를 다루는 기초적 훈련, 역사 이론과 역사관의 기본적 개념 정립 등은 쉽지 않으며, 대학교에서는 이를 역사학자에게 체계적으로 배우게 된다. 대학원이라는 전문가로서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기본을 어느 정도 갖추고도 역사 공부의 길을 계속 추구한다는 것이며, 이쯤되면 준 전문가라 평가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된다. 반면 역사 동호인들은 이를 모두 [[독학]]으로 깨우쳐야 한다. 취미로 하기에 편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겨내야 되고, 역사라는 사료 중심의 학문을 지향하기에 관심받기도 힘들고 지루한 과정도 많이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 동호인과 전공자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들이 좌절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전쟁사나 정치사에는 역사 동호인이 매우 많은 편이지만[* 전쟁사는 무기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사 동호인은 [[밀리터리 동호인]]인 경우도 많다.], 실제 사학과에서는 전쟁사나 외교사보다는 역사학적 방법론에 기반을 둔 경제사회사와 각국 정치의 다이내믹스를 위주로 집요하게 분석적으로 파고들 것을 요구한다. 직접적인 전쟁사 및 군사(軍史)는 [[국방대학교]]나 각군대학, 각군 [[사관학교]] 정도에서나 연구되며 그나마도 제한적인 수준이다. 만일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차라리 정치외교학과를 가서 [[정치학|국제정치학]], 그 중에서도 안보이론을 전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선택이다. 그만큼 현대 역사학에서 순수한 전쟁사/외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아니, 사실 미국 대학 역사학과들의 70년대 이후 박사 학위 논문들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전쟁사나 외교사적 방법론, 사료들을 통해 사회사, 미시사, 문화사, 정치사적 결론을 내는 경우는 많아도, 그 자체만을 다루는건 '''전멸'''이라 봐도 된다.[* 이는 역사학의 근본 논의가 결국 역사학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이기 때문이다. 랑케 사학에서 시작된 객관적 진리에 대한 탐구와 개별 정치사에 대한 연구가 시간이 흐르며 아날 학파에 의해 비판 받고 역사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핵심으로 구조사와 전체사를 연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카에 의해 역사는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이 아닌 다양한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으며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역덕후에 입장에선 전쟁사는 자신들의 흥미를 위한 목적이지만 역사학에서는 전쟁사는 수단일 뿐이며 정치, 사회,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하다.] 한편 역사 동호인의 시야는 사학도와 비교해 확실히 차이가 난다. 오래 활동한 역사 동호인들도 역사학적 방법론은 물론 그 이상의 훈련도 덜 되었기 때문에 사료 검증 능력이 약한 편이다. 이렇듯 역시 동호인들은 사료를 스스로 검증하기 힘든 대신 '사료에다 자기 나름대로 논리를 적용해 살을 붙인 것', '이미 다른 권위자가 풀어 써서 이해하기 쉬운 근거' 등을 인용하는 패턴이 많고[* 사학도가 지도교수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는다면, 역사 동호인은 자신이 끌리는 저술가나 학자에 대해 지나치게 추종하는 예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비단 역사 동호인뿐만이 아니라 취미나 교양 차원에서 역사를 접하는 이들 전반에서 이런 경향이 자주 관찰된다.], 그렇기에 상대가 더욱 탄탄한 사료와 그것을 뒷받침할 논거를 제시하면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당연히 [[키배]]가 아닌 정상적인 토론에서 해당되는 얘기. 그런 반면 사학계의 논쟁은 그와 비교하면 사료를 객관적이면서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또 그 방식도 분명하게 각이 잡혀있기 때문에 일단 사료 그 자체부터 꺼내고 본다. 애초에 학력이나 전공 여부를 떠나서도 역사 동호인들 역시 개설서를 벗어나면 학계의 연구 성과를 공부하며, 전쟁사 등에서는 반대도 가능하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관계에 있어 생각해 볼 만한 [[http://kalnaf.egloos.com/3286008|다이안 퍼키스 교수의 저서 서문]]. [[공시생]] 테크를 탄 역사 동호인 중 일부는 한국사에만 파고들어 다른 과목(특히 영어)에서 과락으로 인해 불합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사는 항상 95~100점 맞는데, [[영포자|영어는 과락 수준의 점수대]]라든지(…). 일부 한국사 강사들([[전한길]], 이만적 등)의 경우 이런 역사 동호인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역사 지식을 쌓는 것이 인생의 재미를 주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시험에는 당연히 도움이 안 된다.''' 한편 상술했던 사실 위주로 역사를 접해야 한다는 인식에 반감을 느껴 연구자로 넘어가지 못하고 동호인에 머무르는 사람들도 꽤 된다. 창작, 즉 역사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것인데 여기서 실제 연구자와의 괴리가 생기는 것. 아무래도 콘텐츠이니만큼 각색은 필요한데 이것이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위에서 말한 자극적인 이론만을 편식하는 사례와 하등 다를 것이 없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발 양보하더라도 콘텐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증을 지나치게 요구하기 마련. 결국 순수 역사의 '딱딱하고 타협이 없는' 입장에 거부감을 느껴 상대적으로 가벼훈 역덕후에 머무르는 것인데, 분명히 역사에서 거짓을 가볍게 논해서는 안되겠지만 그 때문에 역사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인 것은 사학도들도 어느 정도 자초한 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들의 참고문헌도 대부분 번역본이나 영어(현대영어) 자료인 것도 상당한 한계이다. 한국사라면 몰라도 적어도 외국 역사의 경우 그 나라 언어로 된 자료를 직접 읽는 것과 번역본을 읽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실제로 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할 때 외국 역사를 전공하려 한다면, 영어 말고 제 2외국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 동호인들은 1차사료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과 접근해도 그걸 해석할 능력이 없는 것도 한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